갈라진 시대, 우리가 잃어버린 질문 하나

 

순복음중앙교회 진유신목사

 

요즘 세상은 너무 쉽게 둘로 갈린다.
정치도, 세대도, 이념도, 심지어 사람의 말 한마디까지도 흑과 백으로 나뉜다. 서로 다른 생각을 ‘다름’이 아니라 ‘적’으로 규정하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문제는 이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데 있다. 생각할 틈도, 이해할 여지도 없이 우리는 이미 편을 가르고 서 있다.

SNS와 유튜브는 정보를 풍성하게 만든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시야를 점점 좁히고 있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듣고 싶은 말만 골라 보여주고, 그 결과 우리는 점점 확신에 찬 사람이 된다. 그러나 그 확신이 과연 진실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반복된 주장에 길들여진 결과인지는 스스로 묻지 않게 된다.

사회가 건강하려면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왜 그렇게 생각합니까?”라는 질문보다 “그건 틀렸습니다”라는 결론을 먼저 내린다. 질문이 사라진 사회는 대화가 아닌 충돌로 향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상처와 불신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이 분열이 일상의 관계까지 침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정치 이야기로 가족이 갈라지고, 사회적 이슈로 친구 사이가 멀어진다. 서로를 설득하기보다 차단하는 것이 더 쉬워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단된 사회에는 공감도, 연대도 자랄 공간이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라 더 깊은 성찰이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논리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기 위한 질문이다.
“나는 혹시 너무 쉽게 판단하고 있지는 않은가?”
“저 사람의 말 속에는 어떤 경험과 두려움이 담겨 있을까?”

시사는 단순히 사건을 논평하는 글이 아니다. 시대의 방향을 묻고, 사회의 양심을 흔드는 질문이어야 한다. 분열의 시대일수록, 칼럼은 불을 지피는 성냥이 아니라 길을 비추는 등불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다시 질문하기 시작할 때, 사회는 조금 느려지겠지만 그만큼 깊어질 수 있다. 그리고 그 느림 속에서, 잃어버린 대화와 신뢰는 다시 회복될 가능성을 얻게 된다.
지금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용기는,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용기일지도 모른다.                                                                                                                                                                                                                                                                                                                                                                                          순복음중앙교회 진유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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